한달에 다섯살씩 나이 먹는 초등학생?… 경제·금융 활동 체험 교육 만든 김지환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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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EE 작성일24-05-25 08:52 조회8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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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다섯살씩 나이 먹는 초등학생?… 경제·금융 활동 체험 교육 만든 김지환 교사
‘열세 살의 노후대비’ 프로그램 개발
1년 교육으로 금융 지식 수준 높여
“학생들 삶에 도움되는 교육 하고 싶어”
경기 화성시 효행초 6학년 학생들은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다섯 살씩 나이를 먹는다. 3월 새 학기 열세 살이던 학생들은 지난달 열여덟 살로 자라 군대에 갔다. 이달 들어 스물세 살을 먹은 학생들은 대학생이 됐다. 스물여덟 살이 되는 6월이 오면 학생들은 짝꿍을 찾아 결혼을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학년 마지막 12월이면 쉰여덟이 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얼핏 들으면 소꿉놀이 같지만 평범한 놀이가 아니다. 매서운 경제 논리가 이 활동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매주 학급화폐를 받고 어떻게 돈을 굴릴지 고민한다. 모의주식에 투자해 돈을 불릴 수도 있고 저축 통장에 돈을 넣어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달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적용돼 나이를 먹을수록 고정지출은 늘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관리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른이 해도 진땀 빠질 금융 활동을 초등 6학년 학생들이 1년 동안 해내고 있다.
‘열세 살의 노후대비’라는 이름의 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이는 9년 차 초등학교 교사 김지환(33)씨다. 김 교사는 지난 2020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듬해부터 교실에 적용했다. 열세 살의 노후대비는 1학기 시작인 3월부터 2학기 마지막인 12월까지 9개월 동안 학생들이 인생 시기에 맞춰 경제·금융 활동을 간접 체험하는 장기 교육 프로젝트다. 김 교사는 해당 교육의 독창성과 우수함을 인정받아 2021년에 금융감독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효행초 김지환 교사가 개발한 금융교육 프로그램 '열세살의 노후대비' 기본 소개 영상. 학생들은 급여·저축·투자·소비에 해당하는 4개 통장으로 학급화폐를 관리한다. 학생들은 개인 목표 달성을 통해 학급화폐를 소득처럼 얻을 수 있다. /김지환 교사 제공지난 8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 교사는 “지금의 경쟁 위주 입시 교육으로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는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거나 원하지 않은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소득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금융 교육이 학생들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금융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사가 열세 살의 노후대비를 만든 동기 역시 자신의 재테크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코로나19가 막 유행할 때쯤 소셜미디어에서 재테크 관련 콘텐츠가 유행해 처음 투자에 손을 댔다. 중학생 때부터 학교 공부에 열심히 매달렸지만 정작 사회초년생이 됐을 때 돈을 버는 데엔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 교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이 정말 중요한데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고 있다. 몸으로 와닿을 수 있게 경제·금융을 배우도록 활동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한 달마다 다섯 살씩 나이를 쌓으며 인생 주기별 재테크를 배우는 ‘열세 살의 노후대비’다.
김지환 교사가 학교에서 '열세살의 노후대비' 금융 교육을 하자 한 제자가 직접 만든 투자노트. 김 교사는 이 교육 프로그램에서 실제 주가와 연계한 모의 투자를 진행하는데 이에 한 학생이 여러 기업을 조사해 주가가 오를 것 같은 기업들의 특성을 정리했다. /김지환 교사 제공열세 살의 노후대비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과 ‘책임’이다. 학생들은 매주 학급화폐를 소득으로 받는다. 이 돈으로 투자할 주식을 직접 고를 수 있다. 기업을 조사하고 얼마를 투자할지 결정하는 것 모두 학생의 몫이다. 현실 세계의 주가에 따라 손실과 이익 폭이 정해진다. 마음 편하게 돈을 다 저축에 붓자니 주사위로 결정되는 금리가 낮게 나오면 버는 돈이 줄어든다. 매달 고정지출은 증가하기에 금리가 낮으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
대학 진학이나 결혼 등 인생 주기별 주요 선택도 개인의 몫이다. 대학을 선택한 이들 중 일부는 무작위로 뽑혀 학급화폐 소득이 높아진다. 대졸자 중 일부가 고소득 전문직이 되는 현실을 옮긴 것이다. 급우와 가상결혼을 하면 경제 공동체가 생긴다. 함께 학급화폐를 관리할 수도 있지만 배우자가 숙제를 하지 않아 벌을 받고 소득이 같이 감소하는 일도 생긴다.
학생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학급화폐를 교실 안에서 재화처럼 쓸 수 있다. 교실 내 비치된 간식을 사 먹을 수도 있고, 점심시간에 원하는 노래를 듣는 신청권을 구매할 수도 있다. 반면 12월에 모아놓은 돈이 없어 파산한 학생들은 김 교사와 함께 교실 청소를 해야 한다. 이처럼 김 교사는 급여·소비·저축·투자 등 4가지를 중심으로 활동을 설계했다. 동시에 자산 증식의 재미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덧붙여 교육 참여 동기를 높였다.
'열세살의 노후대비'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효행초 교사 김지환 교사가 주택청약 개념을 가르칠 때 쓴 안내문. 김 교사는 주택청약의 원리를 학급 자리배정에 적용해 청약 제도의 이점과 활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김지환 교사 제공김 교사가 경제·금융 교육을 진행하며 또 한 가지 신경 쓰는 부분은 인성 교육이다. 그는 “열세 살의 노후대비는 빈부격차를 겪게 하려는 게 아니라 금융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이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학급화폐를 모아 교실 자리를 사 모으는 등 돈으로 교실과 급우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배제했다”며 “학급화폐를 소득으로 지급하는 방법도 운동하기, 발표하기 등 개인 목표를 달성한 만큼 줘 학생들의 자주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금융과 인성 교육, 두 마리를 모두 잡은 덕에 학부모 반응도 좋다. 김 교사는 “4년 동안 열세 살의 노후대비를 하면서 민원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전했다. 한 학생이 부모에게 “담임선생님이 금융교육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하소연하자 부모가 “수학보다 중요한 게 금융이다”라며 자녀를 독려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긴 시간 교육을 거치다 보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금융에 눈이 뜨인다. 김 교사는 “1년 동안 어린이 경제신문과 경제 관련 책을 읽게 하다 보니 학생들의 지식수준이 높아진다”고 했다. 이어 “한번은 외부 강사를 초청했는데 학생들이 주식의 고평가·저평가 판단 기준을 묻거나 금리에 상관없는 재테크 방법을 질문하는 등 수준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김 교사는 열세 살의 노후대비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키고 다른 교육 현장에도 전파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연말에 그간의 열세 살의 노후대비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책을 펴낼 예정이다. 김 교사는 “처음 열세 살의 노후대비를 개발할 때엔, ‘10년 연속으로 이 교육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금융 관련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강연에 나서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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