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개인 넘어 국가경제 위기 막는 방파제 역할”[필수! 금융교육]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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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부채와 신용이 경제 위기 만들어"
금융교육, 투자 결정뿐 아니라 국가경제 기여
“우리 국민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기본적인 금융지식도 배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됩니다. 예금과 적금의 차이도 모르고 ‘빚투’나 ‘영끌’ 등 과도한 대출을 받고 투자해 어려움을 겪게 되죠. 금융교육은 필수 금융역량을 길러줄 뿐 아니라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8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고승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은 지난달 1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교육이 개인의 경제적 자립과 안정을 위한 역할뿐 아니라 더 나아가 경제위기를 막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막기 위해선 금융교육 필요”
한국경제가 위기였던 순간에 고 회장은 관련 부처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에는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본부 총괄 서기관을 지냈다. 2003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카드사들이 파산위기에 몰리고 신용불량자가 대량 양산됐던 신용카드 사태 당시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신용카드 담당 과장을,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는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을 역임했다.
고 회장은 과도한 부채와 신용이 경제위기를 만든다고 봤다. 근대 금융계 3대 버블로 불리는 네덜란드 튤립버블부터 영국 남해회사 버블, 프랑스 미시시피 투기 버블뿐 아니라 현대 미국의 닷컴버블, 일본 버블경제 등의 예를 들며 “과도한 신용 문제로 신용 경색이 오고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게 금융위기의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부채나 신용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 안정이 필수인데 개인들이 무리하게 빚내서 투자하거나 과도한 대출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하다 위기가 오면 개인이 파산하고 국가 경제 전체가 함께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고 회장은 이같은 위기를 막기 위해선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들이 가상자산 투자, 주식·부동산 투자 등 개인 투자를 할 때 위험성을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어줘야 금융안정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이해력이 높은 사람은 개인의 수입과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충격을 견뎌내는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게 된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닥쳐도 이들은 헤쳐 나갈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소비자의 낮은 금융역량이 위기를 심화시켰다”며 “미국과 영국 등은 이같은 역량 부족으로 가계부채와 개인파산이 급증했다고 분석해 금융교육을 강화했다”고 했다.
또 금융교육을 통해 금융상품의 위험성과 구조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 불완전판매 문제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수익률과 리스크의 관계, 손실 가능성 등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파생상품 등 투자를 위한 전문교육을 받을 때 기본 금융교육이 돼 있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고도 했다.
신용카드 사태 계기로 만들어진 청교협…“민간 노하우 살릴 것”
고 회장은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후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을 맡게 됐다. 청교협은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만들어진 국내 최초 민간 주도형 금융교육 협의체다. 고 회장이 금융교육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2003년 신용카드 사태를 겪으면서다. 그는 “당시 내수 소비 확대를 위해 신용카드 이용 활성화 정책이 시행되자 신용 부적격자에게도 신용카드 발급이 남발됐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심지어 상당수의 10대 청소년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자 청소년 금융교육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며 “과도하게 빚을 지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등 기본적인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과목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이 신설돼 금융교육이 본격적으로 공공교육에서 다뤄지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공공분야에서의 학교 교육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며 민간 금융교육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고 회장은 “학교에서 개인 배경과 환경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실용적이고 폭넓은 금융교육을 제공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며 “금융사 방문이나 체험교육 등 실무적인 금융교육도 필요한데 이를 민간이 맡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청교협은 하나은행과 함께 ‘글로벌 금융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하나은행을 방문해 외환딜러와 만나거나 위조화폐 감별법, 은행 텔러 체험 등 체험형 학습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농어촌 지역 어린이, 이주민 가정, 탈북자, 위기청소년, 미혼모 등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금융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민간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청교협은 메리츠화재와 협업해 농어촌 지역 어린이들이 보험·은행 센터를 방문하는 ‘금융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