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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칼럼

한국 재도약 위한 사다리 국민은 혁신과 포용 국가는 공정한 제도

KCEE 기자 작성일2025-02-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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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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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前 기획재정부 장관
부민안국(富民安國)으로 가는 길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경제성장률(속보치)이 2.0%로 집계됐다. 재작년 1.4%보다는 높지만, 1971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미국에 뒤졌다.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양국의 성장률 역전은 최근 6년간 4차례나 된다. 미국은 1인당 소득이 우리의 2.5배인데도 잠재성장률이 작년부터 우리를 앞질렀다. 잠재성장률은 소득이 증가할수록 대체로 낮아진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우리 경제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구 감소로 노동의 성장 기여도는 머지않아 마이너스(-)가 되고, 15년 후면 잠재성장률이 0%대로 내려갈 전망이다.

올해 여건도 녹록지 않다. 1%대 성장을 바라보지만 갓 막을 올린 관세전쟁 탓에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곤 하나 1인당 국민소득은 2023년 3만5570달러로 세계 1위 룩셈부르크의 4분의 1, 한때 경쟁 상대였던 싱가포르의 42%에 그친다. 지금의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원화 절하까지 겹치면 이런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추경 편성 등 재정 확대와 금융통화 기조 완화로 내수의 불씨를 살리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경기 대응과 별개로 성장률 내리막길을 반전시키려면, 근원적인 해법을 도모해야 한다. 초저출산과 가파른 고령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를 벌충하도록 생산성 향상에 힘써야 한다.

지난달 맥킨지 글로벌연구소는 한국이 인구 충격을 딛고 지금처럼 연 2%씩 2050년까지 성장하려면, 주당 6.4시간 더 일하고 생산성을 1.5% 높여야 하고, 근무시간을 늘리지 않으려면 생산성을 약 3% 올려야 한다고 봤다.

어느 것도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보다 잘사는 영국과 독일도 최근 생산성 증가율을 끌어올렸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긴 호흡으로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짚어보자.

무릇 부민안국(富民安國), 곧 개개인의 삶이 윤택하고 편안한 나라, 넉넉하고 너그러운 문명국가로 발돋움할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갖춰야 할 필요조건은 '국민의 집합적 역량'이다. 자원 부국을 제외한 고소득국은 한결같이 국민 역량이 준수하다. 자원이 변변치 않은데도 잘사는 네덜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일본이 본보기다.

국민 역량은 3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문해(文解), 수리(數理)와 컴퓨팅 등 기초역량이다. 18세기 중반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종교개혁을 일찍 받아들인 나라들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문해율이 급상승해 산업혁명을 앞당겼다. 반면 종교개혁에 소극적이던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북유럽에 비해 문해율이 뒤처져 경제력도 추월당했다.

마찬가지로 신성한 코란의 인쇄를 거부하고 필사만 고집한 이슬람제국은 문해율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 밀리게 됐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인 19세기 중반에 이미 50%를 넘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식자(識字)율에 힘입어 강대국 반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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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탐구, 창의력과 모험심 등 혁신 역량이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질문을 유도하는 교육이 보편화된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20세기 이후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26%를 차지했다. 이스라엘이 1인당 스타트업 수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인류의 소득은 기원후 1년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정체 상태였다가 산업혁명 이후 하키 스틱 모양으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사유재산, 분업, 주식회사, 복식부기 등 시장경제가 촉발한 혁신이 그 주역이다. 최근 10년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이 다른 선진국을 압도하는 것도 테크기업 '매그니피센트7(M7·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플랫폼스, 아마존닷컴, 알파벳, 테슬라)'의 혁신 덕분이다.

셋째는 인지(認知), 소통과 협업하는 포용 역량이다. 서두에 '집합적'이란 용어를 덧붙인 까닭은 이 포용 역량 때문이다.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도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내야만 한다. 그러자면 시민의식이 높고 규율이 확립되는 등 사회자본이 축적돼야 한다. 겸손과 절제의 미덕을 중시하는 '얀테 불문율(Law of Yante)'이 정착된 노르딕 국가들과 관용을 존중하는 프랑스가 그 예다.

국민 역량만 뛰어나면 잘살게 될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충분조건도 갖춰야 한다. 역량을 극대화하도록 뒷받침하는 '공정한 제도'가 긴요하다. 공정의 뜻은 여러 갈래지만, 핵심은 기여에 걸맞은 보상이 이뤄지는가에 달렸다. 양자가 어긋나고 특권과 재량이 난무하다가 몰락한 공산권은 논외로 하자.

신분 차별의 악습이 남아 있는 인도는 국민 역량에 못 미치는 발전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 사유재산을 부정한 공동체 키부츠를 도입해 어려움을 겪다가 1980년대 중반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도약했다. 주요 산업 국유화와 약탈적 과세 등으로 생산성이 유럽 꼴찌로 떨어졌던 1960~1970년대 영국, 한때 미국보다 부유했으나 중소득국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 최대 원유 매장량을 지니고도 혼란을 거듭하는 베네수엘라가 반면교사다.

이상의 필요충분조건에 비춰 지금 우리 상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두 조건 모두 뒷걸음치고 있다. 인구가 줄고 늙어가는데, 국민 역량마저 낙후되는 추세다.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이 선진국 하위권인 점을 빼면, 기초역량은 아직 우수하다. 1949년 농지개혁 때 교육용 토지는 수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사학육성 노력에 힘입어 1966년 문맹을 퇴치했다.

반면 혁신 역량은 정체 내지 퇴조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질문을 독려하기보다 평가에 대비한 주입식 '표층 학습'이 주류를 이룬다. 상의하달, 연공서열과 선례 답습에 치우친 조직문화로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기는 꺼린다.

창업에 나서거나 과학자, 기술자처럼 성취의 편차가 큰 직업보다 공직자, 교사, 의사 등 안전한 직업으로 쏠림이 심화하고 있다.

15세의 장래 직업 선호에서 기술자 대비 교사를 선택한 비율이 주요국 중 가장 높고,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층 비율도 세계 최고다. 도전 정신과 자립 의지가 약한 것이다. 디지털 전환 속도도 더디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적용 기업 비율이 낮고, 인공지능(AI) 활용은 인도네시아, 필리핀보다도 뒤진다. 1인당 챗GPT 사용량은 세계 30위권 밖으로 베트남, 파키스탄보다 적고, 원격 근무 일수는 주요국 중 꼴찌다. 사정이 이러니 혁신기업 비율이 20% 미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사실이 놀랍지 않다.

포용 역량도 악화일로다. 편 가르기와 떼쓰기로 갈등이 증폭되고, 정치권의 '내로남불'로 규율과 기강이 느슨해졌다. 진영논리와 뺄셈정치, 종족주의와 소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해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넘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상이 됐다.

특히 '옹호 연맹'의 거부권이 견고해 합의가 어렵다. 승차 공유, 원격진료, AI 교과서, 온라인 법률상담 등 서비스산업 혁신은 이익집단 저항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강성 노조의 불법 파업과 일감 독점 요구 등 횡포가 여전하다. 방폐장과 송전탑 건설이 가로막히고, 파업 손실 배상 청구 제한, 안전운임제 등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무리한 요구도 쏟아진다.

불공정한 제도 역시 늘어나고 있다. 세계표준과 동떨어지거나 기여와 보상이 따로 노는 제도가 허다하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억강부약(抑强扶弱) 기조와 '보모(保姆)국가' 풍조가 팽배한 탓이다. 그에 따라 남 탓과 정부 탓도 확산하고 있다.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거나 정부의 복지 책임을 강조하는 응답자 비율이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불공정한 제도의 전형은 국민연금이다. 기금의 고갈 가능성과 소득대체율 차이 때문에 기성세대보다 청년층이 불리한 구조다. 그뿐만 아니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소득 대비 실업급여는 105%로, OECD 평균인 56%의 두 배로, 세계에서 가장 관대하다. 그러니 요건만 갖추면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게 낫다. 우리 최저임금이 낮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중위 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6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이 돈을 벌면 적용되는 '참여세율', 곧 실질 부담(세금, 사회보험료와 복지 축소)은 110%로 세계에서 가장 가혹하다. 복지 수혜자의 근로의욕을 꺾는 셈이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를 걱정하기에 앞서 이런 모순부터 바로잡아서 가용 인력이라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국내총생산 대비 농업보조금 비율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선 남아도는 쌀까지 정부가 사주자고 우긴다. 묵은쌀은 심지어 사료용으로 원가의 10%도 안 되는 헐값에 떨이하는 공급과잉 상황인데도 세금을 들여 쌀 생산을 조장해야 할까. 표심만 쫓는 날림 정책이다.

생활비·생산성이 현저히 다른데도 지역·업종과 무관하게 똑같이 책정되는 최저임금은 수직적 형평성에 배치된다. 근로자 보호를 내세운 강력한 해고 규제, 경직적 근로시간제, 통상임금 범위 확대, 일률적 정년 연장 등은 취업자에게 당장 낭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형편이 더 어려운 미취업자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고, 종국엔 자녀들 일자리를 줄여 근로자 자신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족쇄들을 걷어내야 한다. 정공법은 구조개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0~2019년 126개국에서 노동·금융·기업 환경 등 구조개혁 지수가 1 표준편차 개선되면 5년 누적 성장률이 2~6% 상승했다. 과감하고 꾸준한 구조개혁으로 역량을 끌어올리고, 제도를 공정하게 정비해야 한다.

교육·노동 개혁을 서둘러 혁신·포용 역량을 키워야 한다. 평생학습을 정착시키고, 인력 활용·이동의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 불신·강제에 바탕을 둔 '낮은 길'의 정책과 제도를 신뢰·자율에 기초한 '높은 길'로 격상해야 한다.

민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진작하고 유인·책임을 강화할 수 있게 과잉 지원과 획일 규제를 맞춤 지원과 시장친화적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일하는 복지'를 확립해 빈곤층의 자활을 촉진해야 한다.

시민의식 함양과 사회자본 축적도 절실하다. 공동선을 위해 절제(경청·존중·인내)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도록 시민교육에 힘써야 한다. 2016년 스위스 유권자가 기본소득 제안을 부결시켰듯, 보모 국가라는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도덕 편향적인 탁상공론식 법규는 누구나 지킬 수 있도록 순화하는 대신 예외 없이 엄정하게 집행해 기초질서와 법치를 확립해야 한다.

거짓말은 금기로 여기고 가족의 가치를 고양하며, 친구나 가족끼리도 반말을 자제하는 캠페인을 벌여 호혜 문화를 뿌리내려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너그럽고 공손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문명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먹이 활동은 자유롭게 하면서도 굶은 동료를 살갑게 챙기는 흡혈박쥐의 열린 협력 공동체가 그 전범이다.

[오수현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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