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회장 기조연설] 기업가 정신은 경제의 대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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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은 경제의 대들보
경제교육단체협의회 회장 박재완
존경하는 내외귀빈 여러분,
충절의 고장이요, 인재의 산실이자, 한국 정신문화의 원류인 진주에서 열리는 뜻깊은 국제포럼에서 연설하게 되어 더없는 영광입니다.
무릇 부민안국(富民安國), 곧 개개인의 삶이 윤택하고 편안한 나라, 넉넉하고 너그러운 문명국가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먼저 필요조건 은 ‘집합적 인적 역량(Collective Human Competence)’입니다. 자원 부국을 빼면, 고소득국은 어김없이 시민의 역량이 높습니다. 자원이 변변치 않은데도 잘 사 는 일본, 네덜란드, 스위스와 이스라엘이 그 본보기입니다. 일본은 20세기 초에 이미 문맹을 퇴치함으로써 강대국 반열에 합류했습니다.
사람의 역량은 3단계로 나뉩니다. 첫째, 문해(文解; Literacy), 수리(數理; Numeracy)와 컴퓨팅 등 기초(표준)역량입니다. 둘째, 탐구(Inquiry), 모험심, 창 의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역량입니다. 셋째, 인지(認知), 공감, 소통과 협업 하는 융합역량입니다. 앞에서 굳이 ‘집합적’이란 용어를 덧붙인 까닭은 이 융 합역량 때문입니다.
역량만 뛰어나면, 잘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조건은 기여와 보상이 부 합하는 공정한 시스템입니다. 기여와 보상이 어긋나고 특권이 난무하다 몰락한 공산권은 논외(論外)로 하겠습니다. 인도는 신분을 중시하는 카스트(Caste)제도 가 열심히 일할 유인을 훼손해 잠재력에 못 미치는 발전단계에 머무르고 있습 니다. 이스라엘도 건국 직후 사유재산을 부정한 키부츠(Kibbutz) 공동체를 도입 해 어려움을 겪다 1980년대 중반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에야 도약을 거듭했습 니다. 무모한 사회주의 실험으로 몸살을 앓은 1960~70년대 영국, 한때 미국보 다 부유했으나 중소득국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지닌 베네수엘라의 오늘날 혼란상도 반면교사(反面敎師)입니다.
지난 70년 한국경제의 발자취에 대입하면, 부민안국의 조건을 뚜렷이 되새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최빈국에서 단기간에 고소득국으로 도약한 원동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산업화에 걸맞은 인적 자원이 크게 확충됐고, 둘째, 시의적 절한 국가 전략과 공정한 시스템도 마련됐습니다.
우선 광복 후 재외동포 환국, 한국전 피난민 유입, 전후 출산 붐으로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인력의 질도 비약적으로 향상됐습니다. 교육열과 함께 정부와
종교계의 사학 육성 노력에 힘입어 1945년 78%이던 문맹률이 1966년 1% 밑 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울러 정부가 역점을 두고 양성한 이공계(STEM) 표준인 력이 대거 배출되어 한국경제의 뼈대를 이룬 대량생산 제조업의 기반이 됐습니 다. 오늘날 한국의 이공계 대학 정원은 독일,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숫자보다 많 습니다. 사업 기회와 일거리를 찾아 고향과 조국을 벗어나는 도전과 모험이 활발 했고, 현장에서의 임기응변과 돌출된 난제의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는 등 혁신 역량도 배가됐습니다. 기업가정신이 싹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건국 세력은 당대를 풍미하던 사회주의와 계획경제 대신에 자유 민주주의와 제한적이나마 시장경제를 선택하고, 유상 수용과 분배 원칙에 입각한 농지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 부지런히 일하면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군사정권의 혜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 정된 자원을 연구개발(R&D), 수출과 중화학공업 등에 거점 집중(Hub & Spokes) 방식으로 투입해 성과를 극대화했습니다. 표심에 편승한 근시안과 당리당략보다 전문가 의견을 존중해 백년대계와 국리민복을 앞세웠습니다. 그 바탕 위에 기 업가정신이 만개해 혁신이 거듭되며 마침내 기적을 일궜습니다.
한반도 분단 직후 북한은 남한보다 3배 이상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2022년 남한은 북한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8.5배 더 많고, 기대수명은 13세 이상 더 길어졌습니다. MIT의 대런 아세이멀루(Daron Acemoglu)와 시카고대 제임스 로 빈슨(James Robinson)이 역저 “국가는 왜 실패하나(Why Nations Fail)”에서 설 파했듯이, 남북 시스템의 극명한 차이 말고는 그 까닭을 찾기 어렵습니다.
인류의 삶이 지난 300년 동안 획기적으로 나아진 것도 시장경제가 촉발한 혁 신에 기인합니다. 사유재산, 분업, 무역, 주식회사, 복식부기, 금융 등 새 제도 (Institutions)가 생산성을 기하급수로 끌어올린 덕분입니다. 그 주역은 단연 기 업이었습니다. 노벨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기업이 없었다 면, 아직도 우리는 중세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20세기 전반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 도 기업의 혁신을 성장의 핵심 동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혁신 지향적인 시장 의 힘이 ‘보이지 않는 손’이나 가격경쟁보다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기술혁신이 초래하는 일시 독점과 초과이윤은 경합자나 모방자에 의해 희석되 며, 기업에 신제품과 공정을 개발할 유인을 주므로 폄훼해선 안 됩니다. 이처 럼 기업가의 야성이 빚는 ‘창조적 파괴의 강풍(Gale of Creative Destruction)’에 주목한 슘페터는 누구보다 더 적확히 시장경제의 정수를 꿰뚫었다고 평가받습 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은 어떻습니까.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기존 의 성공방정식이었던 인적 역량과 공정한 시스템이 이젠 역설적으로 걸림돌로 바뀐 탓입니다. 잘 살기 위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모두 뒷걸음쳤습니다. 인 구가 줄고 역량마저 낙후되는 추세입니다. 기초역량은 아직 우수하지만, 혁신 역량은 악화일로입니다. 시키는 일은 잘해도 시키지 않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기는 꺼리며, 안전한 직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융합역량 은 낙제점에 가까워 편 가르기와 갈등이 증폭되고, 규율과 기강이 느슨하며, 반(反)기업 정서가 만연합니다.
대중 영합 정치(Populism)가 기승을 부리고, 억강부약(抑强扶弱) 기조의 ‘保姆 국가(Nanny State)’ 풍조도 팽배합니다. 기업 규제, 교육, 노동, 복지, 조세와 보 조금 등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 표준과 동떨어지고 기여와 보상이 따로 노는 불공정한 시스템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자조 의식이 퇴색되고 기업 가정신이 위축되어 혁신과 신산업의 태동도 지체되고 있습니다.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민의 비율이 주요국 중 가장 높아졌습니다.
이런 족쇄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과감하고 꾸준한 구조개혁을 통해 인적 역량 을 끌어올리고, 공정한 시스템을 복원해야 합니다. 가용인력이라도 극대화하도 록 ‘일하는 복지(Workfare)’를 확립하고,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을 서둘러 혁신과 융합역량도 키워야 합니다. 민간의 자율, 창의와 다양성을 진작하고 유인과 책 임을 함께 강화하는 규제개혁과 재정규율 확립도 절실합니다.
이 모두를 관통하며 그 중심에 있는 과제가 바로 기업가정신 고취입니다. 혁신 역량과 융합역량이 향상되면 기업가정신도 고양됩니다. 시스템이 공정해야 기 업가정신이 꽃 피울 수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업은 혁신의 주역이요, 일자리의 원천이며, 부가가치의 남상(濫觴)입니다. 그런 만큼 기업가정신은 경 제의 대들보와 같습니다.
기업가정신이 왕성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간 절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반드시 이뤄내야 합니다. 오늘 포럼이 그 디딤돌 과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다가올 대한민국의 거룩한 장정(長程)에 신의 축복과 가호가 항상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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